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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顔 - 집요한 미디어

한국에서도 여기저기 올림픽 방송만 연신 틀어주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여기 일본도 그러하다. 일본의 스포츠 방송은 왠만해선 방송국간 중복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는 듯 해서 그나마 지겹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미디어라는 건 어디나 조금씩은 집요한 면이 있어서 (예를 들어, 조중동이나 한겨레의 집요함을 떠올려 보자) 보고 있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때가 있는데, 일본 방송의 “笑顔(えがお)” 집착이 그러하다. 笑顔라는 건 “웃음 띈 얼굴”이라는 뜻인데, 올림픽 방송만큼 이 단어를 많이 쓰는 때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반복해서 “에가오”를 외치는데…

예를 들어, 아쉽게 금메달을 놓치고 은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가 시상대에 오르면 웃음 띈 얼굴을 하면, 아나운서는 여지없이 “은메달이지만 역시 에가오로 기뻐하고 있습니다”라던지 하는 멘트를 날린다. 동메달이지만 에가오, 졌지만 에가오, 역부족이지만 에가오, 뭐 이런 식인데, 이게 조금은 집요한 면이 있다.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레스링 선수는 시상대에서 에가오가 아니었다.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머리에 월계관을 썼었지만,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시 은메달을 땄을 때 이번에는 에가오로 두 팔을 기뻐했다. 방송은 4년 전 불만스런 얼굴과 현재의 에가오 사진을 비교해주며 에가오 예찬을 시작한다.

난 은메달을 따고 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정말 기뻐서 에가오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왠지 자기자신에게 분하기도 할 테고, 먼 훗날 결국 은메달도 동메달도 소중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수상 순간만큼은 너무나 아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저렇게나 에가오를 칭찬해대면 “시상식에서는 어떡하든 웃음지어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될 법하다.

사실,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유럽 선수들을 보면 은메달 따고 동메달 따도 너무너무 기뻐한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까지 4년, 힘든 시간을 거쳤고 금메달은 아니지만 어쨌든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이런 포지티브한 감정이 막 전해질 정도다. 일본은 아마도 이런 것이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역시 에가오가 좋은게 아니냐”하는 사회적 프레샤가 생겨버린 듯 하다. 여기서 “알게 모르게“라는 부분이 정말 중요한데, 내가 느끼기에 방송한다는 사람들이 일부러 “에가오”, “에가오”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밝은 서구향에 대한 동경때문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선수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본이 어떤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일본의 대학생이 “피렌체 대성당(?)”인가에 가서 낙서를 하고 온 적이 있다. 그게 온 방송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 왠지 모를 프레샤가 되었고, 대학은 학생들에게 정학(?) 비슷한 처벌을 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피렌체 대성당에는 각국의 관광객이 낙서를 한 흔적이 있고 일본 학생들의 낙서는 그 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학생들이 처벌을 당했다는 소식에 외국에서도 꽤나 놀랬다는 후문이다.

예의바른 일본이라고도 할 수 있고,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일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런 것들이 “일본의 국민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미디어의 집요함”을 나타내는 예라고 해야할까. 어느 쪽이든 간에 조금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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