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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불안한 레진 사태에 대한 소설

※ 이 글은 말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은, 그냥 소설입니다.

티스토리가 “생각이 없는 블로그” 사건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떠 넘기고, 레진은 블로그를 접음으로 해서 “티스토리vs레진”의 싸움은 마무리가 되는 듯 했다. 평소 성적 판타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였던지라, 이미 비공개되어 있는 레진의 포스팅을 보기만 해도 심의위원들은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저 아래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름을 느꼈으리라. 

타의에 의해서 비공개 되긴 했으나, 비공개 된 포스팅은 그냥 숨겨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티스토리는 자신들이 비공개하도록 해 놓고도 조금은 감정이 격해져서 심의위원들의 성적 판타지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티스토리는 “좆레진이라고 해겠겠다. 진짜 좆 되는 게 어떤건지 보여주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평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위원님들의 성적 상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익히 알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심의요청을 받은 방통위의 위원들은 레진의 비공개 포스팅을 보자마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비공개”되었다는 말에 더더욱 어쩔줄 몰라하기 시작했다. 양지에 있는 것 보다 음지에 있는 것이 더욱 음탕해 보이는 법이다. 놀란 가슴과 저 아래 깊은 곳의 뜨거움을 “흠, 흠” 헛기침으로 삭히고, 위원들은 인터넷의 음탕함, 그리고 그 심각함에 대해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이 포스팅은 영원히 삭제되어야 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고 동의했다. 

당연히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는 이런 글 들을 써 올리는 티스토리라는 사이트가 궁금해 졌습니다. 그는 혼잣말 처럼 “그런데, 티스토리라는게 뭐하는 사이트지?”라고 중얼거렸고, 다른 위원들도 그것이, 이런 음란한 글과 사진이 올라오는 사이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위원이 젋은 비서에게 물어봅니다. “티스토리가 머야?”

“요즘 젊은 애들이 하는 블로그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틉니다.”

“블로그”

“네, 뭐 홈페이지 같은 겁니다”

“그래? 그래서, 티스토리는 뭐 원래 그렇고 그런 사이트야?”

“뭐 사용자도 많고, 꽤 유명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 그러니까, 그 다음 있잖습니까, 다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라던데요”

“다음? 그 아고라? 촛불 때 그 아고란지 먼지 그거?”

“네”

그렇다, 여기서 상황은 급반전하게 된다. 위원들 사이에서 조금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다음이라는 거지?’ 라는 소리도 들렸다. 그 때, “대한민국이 뭐 옛날 조선도 아니고 말이죠. 요즘 신문 사이트들 들어가도 이 정도 사진들은 있다고 하던데 말이죠. 인터넷 들어가면 어디가나 이런 사진들 찾을 수 있지 않습니까. 다음에도 신문에서 제공하는 사진들 다 올라갈꺼고”, “그래요, 다음이 지들은 그런 사진들 올리고, 일반 사용자들은 못 올리게 하고, 이것들 완전 권력이야. 권력!”

여기저기서 다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의견이 재정리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방통위는 내부적으로 “이번 건을 계기로 다음의 서비스들이 방송통신심의규정을 위반하고 있지 않은지를 먼저 확인하고”, “자사 서비스 이용자와의 관계를 ‘갑/을’ 관계로 여기고, 불공정한 계약관계를 강요하진 않았는지”, “개인 미디어인 블로그를 탄압함으로써, 결국 언론탄압으로 귀착되는 행위를 하진 않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기로 했다. 다음의 아고라라는 곳에서 유언비어가 횡횡하고 촛불집회를 생방송하고, 자고 일어나면 이명박의 지지율이 추락하던 그 때, 그러니까 소위 촛불정국을 떠올리며 위원들은 머리를 흔들었다. 다음이라고 하면 울분을 삭힐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순진한 고등학생들, 아니 중학생, 초등학생들 까지 거리로 내 몰았던 그 빨갱이 다음이 아니었던가.

그 시간, 티스토리는 “이제 방통위로 넘겼으니까, 레진도 이제 별 수없어”라며 “지가 유명 블로그라고 큰 벼슬이라고 하는 줄 아나봐”라며 반은 안도를 반은 통쾌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티스토리는 방통위로부터 다음과 같은 공문을 받게 된다.

귀사가 의뢰하신 ‘생각이 없는 블로그’를 심의한 결과, 일부 성적 표현이 등장하고 있으나 국민의 의식 수준 향상과 현 인터넷에서의 표현 수위에 비추어 판단한 바, 음란을 결정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음란함의 표현은 단순한 신체의 노출만으로 규정할 수 없음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오히려 그 맥락이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본 위원회는 의뢰하신 건을 토대로 오염되어가는 인터넷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고하고자, 그리고 건전한 정치의식이 깃든 환경을 조성코자 귀사를 포함한 포털 전반의 서비스를 심의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털에서 서비스 되는 뉴스, 사진, 동영상의 음란성, 불건전성을 심의하고, 더 나아가 서비스 이용자와 포털 사업자간의 불공정한 계약관계 등을 아울러 조사할 계획입니다. 관련하여 재공문을 발송하겠지만, 차후 본 위원회의 조사/심의 활동에 적극적인 협조 당부 드립니다.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공문을 받은 티스토리는 다시 해당 부서에서 대책회의에 들어갔고, 결국 모든 진행 상황을 경영진에게 다시 한번 보고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방통위는 다음의 각종 서비스들에 음란 판견을 내리고, 이용자에게 불공정한 계약관계를 강요했다는 내용을 통보하며 해당 서비스들을 폐쇄할 것을 명령했다. 티스토리는 “음란함의 기준이 무엇이냐”, “그럼 스포츠 신문은 다 음란 신문이냐”, “조중동도 처벌하라”, “이명박 정부가 아고라에 앙심을 품고 다음을 정략적으로 죽이려 들고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사태가 “티스토리vs방통위”의 싸움으로 진행되고, 티스토리가 방통위의 결정에 강하게 항변하고 나서고, 대다수의 네티즌들도 방통위에 항의할 때, “Blog In Issue”라는 운영하는 “이스트라”라는 블로거는 “티스토리 사태와 관련하여 방통위를 까는 것이 정의인가”라는 글을 적는 해프닝도 있었다. 티스토리가 자신의 서비스 메인 블로그에 “이스트라”의 글을 링크해 두고 반박글을 올렸고, 네티즌들은 “좆병진탄생”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이스트라” 블로그를 초토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스트라”는 금새 잊어져 버리고 말았다. 네티즌들은 “이스트라”가 그냥 개념없는 블로거일 뿐인데다가, 전선은 “이스트라”가 아니라 “방통위”였기 때문이다. (하략)

—-

이글루스 때도 그랬지만, 일련의 상황을 보아 온 레진님 팬으로서 안타깝지만, 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기준도 없고 뭐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될 지 예상할 수 없는 나라 꼬라지인만큼, 이런 저런 반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아래 3개의 글을 읽으면서 “티스토리, 불안한 레진 사태에 대한 소설”이라는 제목이 떠올랐고, 쉬지않고 써 내려가서 아직 정리는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야기를 더 진행하려니 끝이 안나서, 쓰는  도중 중단. 

레진님 글의 덧글에 대한 2차 접대

네이버, 불안한 이중 생활에 대한 소설

블로거 레진 “원래 티스토리와 가깝다” 조만간 입장 표명

결론은, 좆레진 화이팅!이라는. 좆레진이 마음놓고 블로그질 할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생각함.

조 할아버지를 찾아서.

사이좋게 짝 지어 날아가던 잠자리를 잡았어. 두려움에 벌벌 떨더군. 난 울타리 말뚝위에 녀석들을 놓아 두었어. 궁금한 게 있었거든.

“조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지?”

녀석들은 아직도 조그만 몸을 떨어대며 답을 하지 못했어.

“너희들을 해치려는게 아니야. 난 조 할아버지가 어디로 갔는지가 알고 싶은 거야.”

“저는 키키.”

“저는 위키예요. 친구들은 저흴 함께 불러요. 키키위키라고.”

“그래, 반가워, 키키위키. 나는 콜드레인이라고 해. 조 할아버지를 보지 못했니?”

녀석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서 의견을 주고 받았어. 너무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아서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어.

“조 할아버지는 키가 작고, 하얀 수염이 턱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져 있나요?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있나요?”

위키가 물었어. 나는 그렇다,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 녀석들은 분명 조 할아버지를 보았던 게 틀림없어.

“조 할아버지는 바로 저기….”

– 계속 (쓰기가 귀찮다 -_-)

아임 더 럭키스트.

가끔 음악이 모든 것인 양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다른 건 어찌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무수하게 지각을 했다. 아침 자율학습이니, 보충수업이니 하는 것들은 거의 듣지를 않았다. 그것도 다 음악 때문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음악을 틀어 놓고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기가 싫어서, 십 분만 더, 십 분만 더 하다 보면, 집에서 1교시 시작 시간을 맞이하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열 명 남짓 앉아있는 씨네코아에서 “더 블루스”란 영화를 졸린 눈으로 보고 있었고, 서울로 상경하기 전에는 뮤직 비디오란 걸 보고 싶어서 DJ와 스크린이 있는 카페를 찾곤 했다. 촌스러운 지방 도시에서는 보고 싶은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 카페도 그리 많지 않았다.

요즘은 “Ben Folds”의 Live음악에 푹 빠져서 살고 있다. 매일같이 혼자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선 눈물을 흘리면서 ?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 그 앨범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 라이브가, 왜 이리도 재미있는 것인지, 꼭 한번 그의 공연을 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게 한국이든 혹은 어디이든간에.

Ben Folds Five

회사에서도 잠시 일을 손에 놓고, 눈을 감고 그의 음악만 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열망과 열망, 간절한 바람, 그 열망 속에서 나는 한없이 편안해진다.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것. 간절한 바람 속에서 안식을 찾는 것. “열망이라는 달뜬 감정과 안식이라는 차분함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 나의 사랑법. 열망뿐이라면, 안식뿐이라면, 내겐 아무 의미가 없어.

A에게 the luckiest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유아 더 럭키스트’라고 말해왔어. 하지만, 지금부터 ‘아임 더 럭키스트’라고 말할께.”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A의 대답과 상관없이 아임 럭키스트이니까.

Ben Folds - the luckiest


과거와, 현실과, 상상력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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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씨의 사랑법

어느 날 저녁, 九씨에게 물었다.

당신의 사랑법이 궁금합니다.

사랑? 음, 사랑은 자신감이지.

자신감이라…

그가 한 말의 뜻을 알아보려, 조그맣게 입 속에서 되뇌어 보았지만, 아무런 느낌도 오지 않았다.

무슨 뜻인가요.

그러니까, 남녀가 만나면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겠지. 그러면, 그들은 서로 그런 감정을 조금씩 공유하게 돼. 눈치를 채는 거지. 그럴 때, 남자는 그녀도 혹시 날 좋아하고 있을까, 라던지, 내가 좋아한다 말하면 거절당하지 않을까, 라던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지. 그러나,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어. 그런 고민이 생기는 그 순간이 바로 그녀에게 말을 건네야 하는 때인 거야. 우리 한번 사귀어 볼까, 라고 말이야. 가볍게 이야기하면 돼. 주저할 필요 따윈 없어. 그저 필요한 건 자신감뿐이야.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 고백이라는 게 원래…

아니, 아니. 고백이 아니야. 그저 말을 건넬 뿐이야. 고백이니 뭐니 하는 것처럼 심각한 게 아니라구. 우리 한번 사귀어 볼까, 라고 얘기해 봐. 그러면 백이면 백, 여자들은 잠시 시간을 달라고 얘기하지. 그 때, 남자는 이렇게 대답하는 거야. 좋아, 생각할 시간을 30분 줄께. 더 이상은 안돼. 결국 여자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밖에 없지 않겠어? ‘좋다’와 ‘싫다’. 좋다고 하면 사귀는 거지. 싫다고 하면? 그럴 땐, 이렇게 말해. 그래, 싫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라고 말이야. 나중에 그녀를 어떻게 다시 보냐구?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 거야. 그걸로 끝인 거지. 이봐, 부끄러워 말라구. 그녀가 거절을 했더라도, 그녀는 자네가 그렇게 얘기해 준 것을 평생의 자랑거리로 삼을 거야. 내 나이 24살에 한 남자가 사랑의 고백을 했다고 말이야. 그러니, 자네는 그저… 음… 그러니까… 그렇지, 일종의 자선행위를 한 거란 말이지.

자선행위라는 단어를 생각해 내고는 독창적인 표현이라 여겼는지,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만족감을 난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서 감탄의 표정을 읽어내려는 그의 노력도 말이다. 나는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놀라움을 표현해 주었다.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도 되지 않는 경우의 수를 만들어 놓고는, 모든 것이 자신의 의도대로 될 것이라고 믿는 저 단순함을 자신감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분명 ‘자신감의 화신’임에 틀림없었다. 九씨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녀가 좋다,고 얘기한 경우는 말이지. 기세를 몰아서 얘기해. 그럼 사귀게 된 기념으로 키스나 한번 할까, 라고 말이야.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그녀의 입술을 향해 다가가도 좋아. 그런 적극적인 자세는 권장할 만한 것이야. 뺨을 맞지 않느냐고? 설마! 그런 건 드라마 속 얘기일 뿐, 실제로 뺨을 때리거나 하진 않아.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그대로 키스를 하는 거야. 일종의 간을 보는 거지.

일종의 간. 九씨의 낯선 표현들이 이어졌다. 문맥상 이해는 하겠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를 표현들. 그는 다시 내 표정을 살피고는, 이번엔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조금은 서운해 하였다.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결혼을 하면 평생 키스를 하며 살 텐데, 이 여자와의 키스가 어떨지 미리 간을 보아야 하지 않겠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 없다구.

여자의 간을 보는 그가 결혼은 했을까. 결혼을 했다면 부인은 어떻게 만났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겼다.

결혼은 하셨나요.

그럼, 했구말구, 2살짜리 귀여운 딸이 있지. 결혼한지는 정확히 3년하고 9개월이 되었군.

그렇다. 여자의 간을 보는 남자도 결혼한 기간 정도는 정확히 기억하는 법이다. 왠지 그의 프로포즈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에, 그가 말했다.

와이프는 같은 대학을 나왔어.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부터 알던 사이지. 물론 그 때는 지나가면 가볍게 인사만 하는 정도. 그런데 졸업하고 나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어. 그리고는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몇 번인가 만남을 가졌지. 난 느꼈지. 그녀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다시 만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98년 2월 말이었지 아마. 가볍게 얘기했어. 우리 잘 맞는 거 같다. 한 번 만나보자. 와이프가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군. 그러나 곧 좋다고 했어. 그리고, 그 날 키스를 하고 사귀기 시작. 한달 뒤, 내가 결혼을 하자고 했지. 길게 끌 필요 없거든. 길게 끌어봐야 결국 돌아오는 건 이별뿐이야.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고, 6개월 후, 그러니까 98년 9월 말, 조금은 더운 날이었지만, 결혼식을 했어. 사랑이란 머뭇거리거나 할 성질의 것이 아니거든. 어떤가, 자네.

무엇이 어떻냐는 건지 모르겠지만, 대단하시다는 인사치레를 건네었다. 아니,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아무 고민도 없이 저런 식의 결혼이 가능하다는 것이 말이다. 그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해 보았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은 첫번째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첫번째이자, 마지막 사랑인게지. 하하하.

호탕한 웃음으로 그와의 대화는 끝이 났다. 첫번째인 것은 분명하나, 동시에 마지막 사랑일거라 장담하는 저 자신감. 九씨의 사랑법. 결혼을 위해 그 인생에 유일한 기지를 부렸던 九씨.

이하 생략.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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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어느 날 저녁, K씨와 나누었던 대화를 재구성. 총총.


Franz Fernando ? Tell her tonight

    이어지는 이야기

  1. 노원역에서 만나는 세가지 삶의 방식
  2. 꼬마니콜라스와 그의 아빠 한스
  3. 처음만난 J양, B군, Sul양이 각자 자신의 인생을 들려주다.

[Draft] 어느 중년 여배우 이야기

난 47세의 여자 연기자다 주로 TV드라마에서 조연으로 연기해왔다 연기자 생활도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한다 긴 여정이었다

26의 나이 처음으로 방송을 탔을 때 난 세상을 가진 듯 했다 비록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 파출부 역을 연기했지만 처음치곤 꽤나 대사도 쳤고 지인들도 알아보곤 모두들 반가운 인사를 전했었다 난 기뻤다 하지만 첫 역할이었던 파출부 역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21년의 연기생활을 뒤돌아보니 나의 연기를 만든 8할은 파출부였다

긴 연기생활에 방황도 있었다 연애인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동경했던 것이었다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후 2~3년이 흘렀을 때 였던가 난 급속도록 타락했다 처음엔 그 타락이 내게 방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난 단지 그런 것이 내가 동경하는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약간의 과소비 근사한 남자와 혹은 부유한 남자와의 원 나잇 스탠드 술과 음악과 댄스 그리고 살짝 맛보기 시작한 마리화나 즐거웠다 눈에 띄지 않는 조연이었지만 그것은 워낙 돋보이는 주연 여배우들 때문일 뿐 길거리에 나서면 난 새련된 외모와 근사한 몸매를 뽐내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내 주변에 남자는 끊이지 않았고 매일 밤은 술과 남자와 함께 흥청였다

즐겁고 몽롱했던 타락의 삶은 - 비록 그 당시에는 그것을 타락이라 여기진 않았지만 - 오래가지 않았다 술과 담배와 마리화나 그리고 그런 나를 견디지 못하고 쉽게 떠나갔던 수 많은 남자들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그들은 그렇게 떠나갔고 난 그냥 그렇게 떠나 보냈다 그러면서 나는 피폐해져 갔다 하지만 정작 나를 끝없는 방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사람들의 비난이었다 파출부 같은 조연 역만 맡는 데 대한 정신적 충격때문에 내가 문란한 생활을 계속한다는 것이 비난의 요지였다 사람들의 시선과 나의 생각이 불일치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난 진정 방황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시선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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