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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굳바이 푸코

미셸푸코 전기

서점에서 “빌 게이츠”의 전기를 아들에게 건네는 어머니가 있다. ‘저 전기는 얼마나 많은 찬사와 미사여구로 “빌 게이츠”를 미화하였을까.’ 어린 시절 읽던 “이순신”과 “링컨”, 그리고 “워싱턴”을 이제 “빌 게이츠”가 일부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체 게바라 평전”과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묵직하게 압박하는 이 전기들의 존재감은 바로 주인공의 존재감이며 그들의 삶의 무게이다. 게다가, “체 게바라 평전”은 책장 한 곳에 무질서하게(!) 놓여있기만 해도, 그럴싸한 인테리어가 되어버리는 부가가치까지 지니고 있다.

많은 전기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체 게바라 평전”을 권하는 운동권 선배와 “빌 게이츠”를 권하는 어머니가 있다고 하자. 우리는 여기서 “목적의식”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전기가 교훈을 담고 있다고 배워왔지만, 전기의 가장 큰 특징은 교훈이 아니라 교화이다. 바로 “목적의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전기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우리가 푸코의 전기를 꺼내들 때, 이 행위 역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기는 “교화”하려 하고, 우리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미셸 푸코]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교화”를 걷어버리고, 왠지 우리의 “의도” 또한 걷어버리려는 듯 보인다. 이제 푸코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꺼내든다면, 당신은 오히려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의 인생과 정면으로 맞닥드릴 준비가 되었다면, 책장을 넘겨라. 그러나, 단단히 마음을 먹는 것이 좋다.

[미셸 푸코]는 첫머리부터 우리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수많은 인물들의 나열과 철학적 언어의 직접적인 사용은, 책장을 채 몇장 넘기지도 못한 독자의 숨통을 벌써부터 턱턱 막히게 만든다. 기자이자 치밀한 전기작가인 디디에 에리봉은 푸코의 생과 철학의 궤적을 촘촘히 엮어나간다. 푸코가 사망하기까지 5년여 동안 푸코의 삶을 추적하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디디에 에리봉은 또 한명의 ‘수집가’이며, ‘작가’이며, ‘주석가’이다.

장애물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온 난해한 개념들을 무사히 헤치고 넘어왔다 하더라도, 우리는 곧 혼란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개념의 장애를 넘어서고도, 우리가 또다시 안개 속에 갇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푸코라는 인물의 모습을 손에 잡을 수 없는가? 이 안개는 작가의 의도인가? 혹은 작가의 무능력인가? 혹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의 무능력인가?

일반적으로 전기작가는 한 인물의 (강조하고 싶은) 몇몇 특징과 성향을 추출해서, 그것으로 그의 인생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더 나아가 이렇게 확립된 일관성을 확대하여 인물 일대기의 부분부분에 그것을 역으로 적용시키기 마련이다. 특히, 美化와 계몽을 목적으로 하는 전기라면, 이것은 책의 전면에 뻔뻔스럽게 등장한다. 결국 일반적인 전기는 “생략과 강조가 야기하는 왜곡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창조행위이다.”

그러나, [미셸 푸코]의 전기작가인 디디에 에리봉은 -푸코에 대한 깊은 애정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전략을 버린다. 그는 오히려 푸코의 인생에서, 그의 업적과 지인들의 긍정적인 평가 뿐만아니라, 오류와 부정적인 평가까지 모두 나열한다. 그리고, 그의 행적을 꼼꼼하게 뒤쫗고, 그의 저서 및 논문, 기고문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2차문서, 그의 편지등등 빠짐없이 나열해 놓는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읽었던 “이순신”과 “링컨”의 전기에 익숙해 있음으로, 그리고 디디에 에리봉의 이러한 전략 탓에, 푸코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쉽게 길을 잃는다. 어린시절 정신과 치료도 받았고, 가장 좌파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이이었지만, 의사인 아버지 덕분에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었고, 이란의 호메이니를 지지한 것으로 두고두고 비판세력의 입에 오르내렸던 푸코. 푸코의 완벽한 철학서에 매료되었던 독자라면, 전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푸코의 오류에 실망할 지도 모를 일이다. 어째서, “푸코”를 “링컨”처럼 미화할 수 없었던가. 저자는 왜 푸코의 삶을 그토록 낱낱히 파헤쳐 버렸는가.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푸코 자신의 저작들이 극도로 미시적인 연구방법의 산물이라는 사실에서 디디에 에리봉의 의도를 엿볼수 있다. 푸코는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성찰”만으로 자신의 연구결과를 얻어내는 기존의 철학 방식과의 단절을 시도했다. 철학적 사유방식에 대한 새로운 방식. “전통적 철학의 경전적 텍스트를 버리고, 탐정소설이나 개혁안들을 ‘샅샅이 뒤지며’” 그 곳에서 “진짜로 의식적이고 조직적이고 반성적인 전략”이 어떻게 숨어있는지를 찾아내는 작업. 이러한 작업이 바로 푸코의 작업방식이었다. 그리고 디디에 에리봉은 바로 “푸코적인 연구방법”과 “푸코적인 글쓰기”를 그대로 채용해서 푸코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다.

“존경.” 즉, 디디에 에리봉이 푸코의 오류들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은 오히려 푸코에 대한 존경을 뜻하는 것이다. 푸코의 철학(적 방식)을 그대로 푸코의 인생에 적용시키기!! 푸코에 대한 애정을 깊이있게, 그리고 동시에 “정확하게” 표현하기. 이보다 더 “푸코의 전기에 어울리는 방식”이 또 있을까. 푸코가 살아있다면 -자신의 오류를 그대로 노출시켰음에도-, 그는 분명 이 전기가 마음에 들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러한 “푸코에 대한 노출주의”는 또 다른 효과를 가지는 데, 그것은 바로 푸코에 대한 고정관념을 걷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정관념”이란 “단 하나의 단어나, ‘~주의’로 표현되는 푸코”를 의미하는 데, 이것은 푸코의 삶이나 철학과도 무관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푸코는 살아 생전에 “구조주의자 푸코”라 불리길 극도로 싫어했다. 구조주의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실제로 그의 철학은 구조주의라고 불릴울 수 있는 많은 혐의를 가지고 있다. 들뢰즈 역시 “레비-스트로스, 라캉과 함께 알튀세르, 푸코를 나란히 ” 구조주의자라 언급했다. 하지만, 푸코는 “구조주의자 푸코”라 불리길 거부했다. 한 단어로 표현되는 철학은 “수많은 생략과 왜곡”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때문에 에리봉은 푸코의 전기에서 그의 인생중 특정부분을 강조하거나, 생략하는 방식을 피했던 것이 아닐까.

푸코의 전기에서 “푸코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 그리고 “푸코를 푸코에 적용하여, 존경을 나타내는 것”. “저기에 현대 철학이 앉아있다”라는 찬사를 받은 천재 철학자의 인생을 느껴보라. 그도 역시 오류를 범하고, 또한 (중요한 철학적) 족적을 남기고, 다시 자신의 족적을 지우는 인간이다. 그가 죽은지도 어느덧 20여년이 흘렀지만, 나는 뒤늦게 그를 알았고, 뒤늦게 인사한다. “굳바이 푸코…”

바나나피쉬 외전

덧붙여 :

나는 푸코의 죽음이 임박함을 느끼고, 몹시 마음이 아파왔다. 차라리 여기서 책장을 덮고만 싶었다. 그리고, 결국 푸코의 죽음을 대했을 때, 내 가슴이 작은 입방체로 쪼그라든 느낌이 들었다. 책이 끝나고, 부록처럼 실린 편지와 논문들을 볼 때, 나는 “바나나 피쉬”를 떠올렸다.

“바나나 피쉬”는 외전이 있어서 얼마나 가슴 아팠는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웠는가…

“굳바이 에쉬, 굳바이 푸코..”

미셸푸코 - 디디에 에리봉

미셀 푸코 (下) - 디디에 에리봉 (ISBN:89-85449-55-9)
제 III부 “투사 그리고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
9. 예술작품 같은 인생 (p235 - p236)

미셀푸코

6월의 이른 아침, 파리에는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그러나 파티에-살페트리에르 병원의 좁은 뒤뜰에는 미셸 푸코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랜 기다림, 무거운 침묵이었다. 마침내 슬픔으로 갈라지고 억눌리고 변질된 목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내 작업의 동기는 아주 간단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토록 끈질기게 작업에 몰두했던 나의 수고는 - 단지 호기심, 그렇다,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을 허용해주는 그러한 호기심이다. 지식의 습득만을 보장해주고 인식 주체로 하여금 길을 읽고 방황하도록 도와주지 않는 그러한 지식욕이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우리 인생에는 ‘성찰과 관찰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현재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며, 자기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다르게 지각할 수도 있다’라는 의문이 반드시 필요한 그런 순간들이 있다. (…) 그렇다면 철학이란 - 철학적 행동이란 -,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사유에 대한 비판작업,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것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아닐까.”

이것은 『쾌락의 사용』서문에 나오는 푸코 자신의 말이었다. 질 들뢰즈가 읽었고 조문객들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대학에서 혹은 정치투쟁에서, 또 혹은 동시에 두 곳에서, 우정과 애정으로 점철된 수천갈래의 길 속에서 푸코의 수천 개의 얼굴과 마주쳤던 사람들이었다. 저 안쪽에 조르주 뒤메질과 조르주 캉길렘이 감정을 억제한 담담한 슬픔을 띄고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폴 벤느, 피에르 부르디외, 피에르 블레즈등등 콜레주 드 프랑스의 몇몇 교수들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시몬느 시뇨레, 이브 몽탕, 그리고 법무장관인 로베르 바댕테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알렝 조베르, 장 다니엘, 베르나르 쿠슈네르, 클도르 모리악도 보였고, 그외 그와 청원서에 같이 서명을 했거나 단순히 수요일마다 그의 강의를 들으러 갔던 유명, 무명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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